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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분석/최신동향2026년 9월 15일조회 0

성인지 감수성은 재판에서 어떻게 쓰이나

판결문에서 이 말을 처음 본 분들은 대개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법에도 없는 표현이 어떻게 재판의 기준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느 법률에도 이런 이름의 조문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범죄 사건의 서면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이 말이 무엇을 요구하는 태도이고, 무엇까지는 요구하지 않는지, 그리고 다투는 쪽에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짚었습니다.

조문에 없는 말이 왜 판결문에 있나

법원이 증거를 읽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요건도 아니고 증거법칙도 아닙니다.

출발점은 성희롱을 이유로 한 징계가 정당한지 다투어진 행정사건이었습니다. 그 뒤 형사재판으로 옮겨 와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국면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입법이 아니라 실무에서 쌓여 온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새로운 처벌 근거로 읽으면 사건을 잘못 봅니다. 처벌의 근거는 여전히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각 조문입니다. 이 표현이 걸리는 자리는 그 조문을 적용하기 전, 사실을 확정하는 단계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나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놓인 사정을 먼저 이해한 뒤 진술을 읽으라는 요구입니다. 어색한 부분을 발견하더라도 곧바로 거짓으로 결론짓지 말고 그런 모습이 나타난 배경을 함께 보라는 뜻입니다.

실무에서 자주 문제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정들입니다.

  • 사건 직후 곧바로 신고하지 않고 몇 달이 지난 뒤에 알린 경우
  • 사건 뒤에도 상대와 평소처럼 연락을 주고받은 경우
  • 같은 자리에 다시 나가거나 함께 일을 계속한 경우
  • 진술의 큰 줄기는 같은데 시각이나 순서가 조사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 경우

예전에는 이런 사정이 그 자체로 진술을 배척하는 근거가 되곤 했습니다. 지금은 그 사정이 나타난 이유를 함께 살피라는 쪽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피해자다움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통념을 가리킵니다. 이 통념 하나만으로 진술을 배척하지 말라는 것이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증명책임이 바뀌는 것인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이 법리에서 가장 많이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은 범죄사실의 인정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기준은 성범죄라고 해서 낮아지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 작동하는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자유판단에도 경험칙과 논리칙이라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하는 역할입니다.

대법원도 이 점을 여러 차례 함께 밝혀 왔습니다. 피해자 진술을 배척할 때 신중하라는 것과, 그 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명제입니다.

오해실제
진술만 있으면 유죄가 된다진술의 신빙성은 여전히 심사 대상이고 증명 기준도 그대로입니다.
피고인이 결백을 증명해야 한다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습니다. 이 구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연 신고는 문제 되지 않는다곧바로 불리하게 보지 않을 뿐, 지연의 경위는 계속 심리됩니다.
진술이 달라져도 상관없다핵심 부분의 번복은 여전히 신빙성을 흔드는 사정입니다.

다투는 쪽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피해자답지 않다는 논증은 지금의 재판에서 힘을 잃었으므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대신 쓰이는 것은 진술 밖에 있는 자료입니다. 통화와 위치, 결제, 출입 기록처럼 사람의 기억과 무관하게 남는 것들이 여기에 듭니다. 진술 내부의 문제를 지적할 때도 태도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과의 불일치를 짚어야 합니다.

  1. 주장된 시각과 장소를 표로 정리하고 기록으로 대조합니다.
  2. 조사마다 달라진 부분이 핵심인지 주변인지 구분합니다.
  3. 진술이 처음 나온 경위와 그 사이에 오간 대화를 확인합니다.
  4. 다투지 않는 부분과 다투는 부분을 나누어 의견서에 적습니다.

순서를 뒤집으면 손해를 봅니다. 통념에 기댄 반박이 앞에 나오면 남은 주장까지 같은 색으로 읽힙니다.

주의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나 복장, 이전의 교제 관계를 끌어들이는 변론은 신빙성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읽힙니다. 다툴 것이 있다면 기록으로 다투는 편이 낫습니다.

절차에는 어떤 장치가 함께 있나

태도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항이 제27조부터 제34조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조사와 공판의 진행 방식이 이 조항들로 달라집니다.

제27조는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이 형사절차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변호사가 조사와 공판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게 합니다. 제34조 제1항은 신청이 있으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동석하게 하도록 정하고, 같은 조 제2항은 이를 수사기관의 조사에 준용합니다.

19세 미만 피해자 등에 대해서는 제30조 제1항이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의 영상녹화와 보존을 정합니다. 조사 전에 영상녹화 사실과 그 녹화물이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도록 한 규정도 같은 조에 함께 들어 있습니다. 변론에서는 이 절차가 지켜졌는지가 먼저 확인됩니다.

이 장치들은 피고인의 방어권과 나란히 놓입니다. 진술이 어떤 방식으로 수집되었는지 확인하는 일이 변론의 출발점이 되는 이유입니다.

이 법리에도 한계가 있나

있습니다. 그 한계를 확인한 판결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첫째, 이 표현이 유죄의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증거를 평가하는 태도이므로 그 자체가 사실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둘째, 무죄추정과 증거재판주의를 밀어내지 못합니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제307조 제1항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태도가 증거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진술의 핵심이 흔들리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주변 사정에 대한 기억의 차이와 범행 자체에 관한 번복은 무게가 다르고, 재판부는 이 둘을 구분해 심리합니다. 그래서 어느 부분이 흔들리는지를 정확히 짚는 작업이 변론의 핵심이 됩니다.

확인할 것
· 주장된 일시와 장소가 객관적 기록과 맞는지
· 조사 회차별로 달라진 진술이 핵심인지 주변인지
· 사건 전후에 오간 메시지가 전부 확보되었는지
· 조사 과정에서 유도신문이나 절차 위반이 없었는지

정리

성인지 감수성은 조문이 아니라 증거를 읽는 태도입니다.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이 놓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념만으로 진술을 배척하지 말라는 요구이며, 증명책임이나 증명의 정도를 바꾸는 장치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투는 쪽의 과제는 통념을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진술 밖의 자료를 모으고 다투는 지점을 좁혀 두어야 하며, 첫 조사 전에 변호사와 함께 그 범위를 정해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참조 조문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308조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7조, 제30조, 제3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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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피해자 진술만 있으면 무조건 유죄가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고, 진술의 신빙성은 여전히 심사 대상입니다. 다만 통념에 기대어 진술을 배척하는 방식의 판단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신고가 몇 달 늦었다는 점을 지적하면 안 되나요?

지연 자체를 곧바로 불리한 사정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 경위를 심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연 기간에 오간 연락과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자료로 정리해 제출하는 쪽이 실효가 있습니다.

제가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이 구조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실제 재판에서는 반대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는 쪽이 유리하므로, 통화와 위치, 결제 기록처럼 기억과 무관한 자료를 먼저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피해자 측에 변호사가 붙으면 수사가 불리해지나요?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은 법률에 따라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그 변호사는 조사와 공판에 참여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습니다. 제도상 예정된 절차이므로 불리한 사정으로 볼 일이 아니며, 피의자 쪽에서도 같은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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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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