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사건에서 합의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으로 사건이 끝난다고 이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실제 구조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죄명인지에 따라 합의가 미치는 효과가 다르고, 어느 시점에 하느냐에 따라 반영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반대로 합의를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순서를 잘못 잡으면 회복을 시도한 행위가 오히려 불리한 사정으로 남습니다. 합의가 절차의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어디까지가 그 한계인지 정리했습니다.
합의하면 사건이 끝나는가
과거에는 상당수 성범죄가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죄였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제도가 바뀐 지 오래되었는데도 오해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성범죄의 친고죄 규정은 폐지되었습니다. 형법 제306조가 두고 있던 고소 요건도 개정으로 삭제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소가 취소되어도 수사와 재판은 그대로 진행됩니다. 합의를 했으니 사건이 종결된다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일부 죄명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유형이라면 효과가 직접적입니다. 다만 성범죄의 주요 조항 대부분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죄명별 확인이 먼저입니다.
같은 사건에서 여러 죄명이 함께 문제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때는 어느 부분에 효과가 미치는지가 갈립니다. 공소장이나 피의사실에 적힌 죄명을 하나씩 짚어 보아야 합니다.
수사 단계와 재판 단계에서 무엇이 달라지나
검사가 기소 여부를 정할 때 피해 회복과 피해자의 의사는 중요한 고려 요소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47조는 검사가 여러 사정을 참작해 기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초범이고 사안이 중하지 않다면 기소유예나 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하는 처분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가 가능한 사안이라면 기소 전에 진행하는 편이 실효가 큽니다.
| 구분 | 수사 단계 | 재판 단계 |
|---|---|---|
| 판단하는 곳 | 검사 | 법원 |
| 반영되는 자리 | 기소 여부와 처분의 종류 | 선고형과 부수처분 |
| 가능한 결과 | 기소유예, 교육 이수를 조건으로 하는 처분 | 양형에서 감경 요소로 고려 |
| 합의서를 내는 곳 | 담당 검사실 | 재판부 |
| 늦었을 때 | 기소되면 양형 문제로 넘어감 | 선고가 임박하면 반영이 어려움 |
기소된 뒤에는 양형에 반영됩니다. 형법 제51조가 정한 양형의 조건에 범행 후의 정황이 들어 있고, 양형기준에서도 피해 회복은 감경 요소로 다루어집니다. 다만 합의만으로 형이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범행의 경위와 피해의 정도, 재범 위험성이 함께 평가됩니다.
합의서에 무엇을 적고 언제 내야 하나
- 피해 회복을 위한 금액과 지급 방법
-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기재
- 민사상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조항
- 서로 접촉하지 않기로 하는 약정
- 내용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하는 조항
두 번째와 세 번째를 뭉뚱그리면 문제가 생깁니다. 형사상 의사와 민사상 정산은 성격이 다르므로 각각 나누어 적어야 합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장만 적고 정산을 빠뜨리면 뒤에 손해배상 청구가 다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작성만 하고 제출하지 않으면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수사 단계면 검찰에, 재판 중이면 법원에 냅니다. 제출 시점도 중요해서, 선고가 임박한 뒤에 내면 심리에 반영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인감증명서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함께 첨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누가 서명했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미성년자라면 법정대리인이 관여해야 하고, 대리인이 작성했다면 위임 사실을 보여 주는 서류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도 되나
연락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것은 2차 피해로 평가될 수 있고, 사안에 따라서는 별도의 처벌 규정에 걸립니다. 가족이나 지인을 통해 전하는 방식도 위력이나 회유로 읽힐 수 있어 위험합니다. 좋은 뜻으로 한 연락이 그렇게 읽히지 않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그래서 합의 시도는 대리인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변호인이 수사기관을 거쳐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접촉 방식 자체가 양형에 영향을 줍니다.
합의를 시도했다는 사실보다 어떤 경로로 시도했는지가 기록에 남습니다.
주의
접촉 금지가 고지되었거나 임시조치가 내려진 상태라면 직접 연락하는 것 자체가 별개의 문제가 됩니다. 문자 한 통, 전화 한 통이 그대로 기록에 남고 자료로 제출됩니다.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더라도 경로부터 정하십시오.
연락처를 알 수 없으면 어떻게 하나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비공개된 사건에서는 직접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쓰는 것이 형사공탁입니다. 공탁법 제5조의2가 형사공탁의 특례를 두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공탁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공탁은 합의와 같은 효과를 갖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회복을 시도한 사정으로 고려됩니다. 피해자가 합의 자체를 원하지 않는 사안에서는 남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금액이 지나치게 낮으면 오히려 진정성이 의심받으므로 사안의 정도에 맞는 산정이 필요합니다. 피해자가 수령을 거부할 수도 있는데, 수령 여부와 무관하게 공탁 사실 자체는 기록에 남습니다.
공탁한 뒤에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정산 방식을 문서로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같은 돈을 두 번 지급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공탁금을 돌려받는 절차와 합의금 지급 시기를 어떻게 맞출지 미리 정해 두십시오.
합의금은 어떻게 정하고 피해자는 무엇을 확인하나
정해진 표는 없습니다. 사안의 정도, 피해의 내용, 당사자의 사정에 따라 폭이 큽니다. 민사 손해배상에서 인정되는 금액이 하나의 참고가 되고, 치료비와 위자료, 휴업 손해가 항목으로 잡힙니다.
지나치게 높은 요구는 별도의 문제로 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정 근거를 남겨 두는 편이 양쪽 모두에 안전합니다.
합의에 응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선택입니다. 응할 의무는 없습니다.
합의서에서 확인할 것
· 금액과 지급 시기를 날짜로 특정했는가
· 형사상 의사와 민사상 정산을 나누어 적었는가
· 서로 접촉하지 않기로 하는 조항을 넣었는가
· 지급이 늦어질 때 어떻게 할지 정했는가
응하기로 했다면 금액과 지급 시기, 접촉 금지 조항을 문서로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지급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공정증서로 작성하거나 선지급을 조건으로 하는 방식도 쓰입니다.
합의가 없거나 번복되면 어떻게 되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건에도 다툴 지점은 남아 있습니다. 사실 관계와 법리 판단이 먼저입니다. 부수처분의 면제나 기간 단축을 구하는 자료도 따로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합의가 없다는 이유로 나머지 자료까지 놓아 버리는 것이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재범 방지를 위한 조치, 치료 프로그램 이수, 생활 환경의 변화는 구체적인 계획으로 제시될 때 의미를 가집니다. 다짐만 적힌 서면은 무게가 실리지 않습니다.
합의 이후에 피해자가 의사를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라면 법적 효력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적습니다. 다만 심리에서는 사정이 달라져, 왜 번복되었는지가 함께 검토됩니다.
합의 과정에서 압박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면 오히려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연락과 지급의 경과를 문서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연락했는지가 그대로 확인될 수 있어야 합니다.
회사와 학교 절차는 왜 따로 가나
형사 사건과 별개로 직장의 징계 절차나 학교의 심의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판단 기준과 기간이 서로 다른데, 형사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와 징계에서 요구되는 정도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형사에서 처분이 가벼웠다고 해서 징계가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형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미루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에도 징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라면 학사 일정과 심의 기간이, 회사라면 인사 규정에 적힌 절차가 따로 돌아갑니다. 형사 절차의 속도에 맞추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 절차에 어떤 자료를 낼지 미리 정리해야 합니다. 한쪽에서 한 진술이 다른 절차에 그대로 제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정이 겹친다면 어느 쪽이 먼저 오는지도 확인해 두십시오.
정리
합의는 사건을 끝내는 장치가 아니라 처분과 양형에서 고려되는 사정입니다. 이 전제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을 언제 해야 할지가 정해집니다.
죄명별로 효과가 다르므로 어느 조항이 적용되는지부터 확인하십시오. 반의사불벌에 해당하는 부분이 있는지, 여러 죄명 가운데 어디에 효과가 미치는지를 나누어 보아야 합니다.
접촉 방식과 시점이 결과를 바꿉니다. 직접 연락보다 대리인과 공탁 같은 절차를 통한 방법이 안전하고, 기소 전에 움직일수록 선택지가 넓습니다. 회사와 학교의 절차는 형사와 별개로 돌아가므로 함께 계획해야 합니다.
합의서는 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디에 언제 내는지까지가 한 묶음입니다.
참조 조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5조(미수범) · 형법 제51조(양형의 조건) · 형사소송법 제247조(기소편의주의) · 공탁법 제5조의2(형사공탁의 특례) · 형법 제306조(고소) 관련 개정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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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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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합의하면 사건이 종결되나요?
성범죄의 친고죄 규정은 폐지되어 고소가 취소되어도 수사와 재판은 계속됩니다. 합의는 처분과 양형에서 고려되는 사정입니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도 되나요?
2차 피해나 회유로 평가될 수 있어 위험합니다. 대리인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연락처를 알 수 없으면 방법이 없나요?
형사공탁 제도를 활용해 피해 회복 의사를 남길 수 있습니다. 합의와 같은 효과는 아니지만 회복 시도로 고려됩니다.
합의서는 언제 제출해야 하나요?
수사 단계면 검찰에, 재판 중이면 법원에 제출합니다. 선고가 임박한 뒤에 내면 심리에 반영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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