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과 청소년이 관련된 사건에서는 물리적인 힘이 없었다는 점이 자주 다투어집니다. 상대가 거부하지 않았다거나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그런데 법은 신뢰 관계를 만들어 판단을 흐리게 한 뒤에 이루어진 행위를 따로 다룹니다. 어떤 조문이 적용되는지, 위계와 위력을 무엇으로 판단하는지, 만난 적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되는지, 유죄가 되면 무엇이 따라오는지를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그루밍이라는 말은 법에 없습니다
조문을 아무리 찾아도 그루밍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신뢰를 쌓아 상대의 저항 의사를 약하게 만든 뒤에 이루어진 행위를 설명하는 말이고, 실제 재판에서는 위계와 위력이라는 요건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사건을 볼 때 물어야 할 것은 그루밍이었는지가 아닙니다. 어떤 조문의 요건이 채워졌는지입니다.
다만 2021년부터는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유인 행위를 직접 처벌하는 조항이 따로 생겼습니다.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를 독립된 범죄로 다루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조항이 생기면서 실제 만남이 없었던 사건도 정면으로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용어를 정확히 두는 데에는 실익이 있습니다. 고소장이나 기사에 그루밍이라고 적혀 있더라도 수사와 재판에서 실제로 검토되는 것은 속임이 있었는지, 의사를 제압할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그리고 상대가 몇 살이었는지이기 때문입니다.
위계와 위력은 어떻게 판단하나
위계는 상대를 속이거나 착오에 빠뜨려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성행위 그 자체에 대한 착오만 위계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행위에 이르게 된 동기나 대가에 관한 착오도 위계에 포함된다고 판단을 바꾸었습니다.
이 변경의 실무적 의미는 큽니다. 예를 들어 다른 이유를 대며 만남을 유도한 경우처럼, 종전 기준으로는 위계가 아니라고 다투던 사안이 처벌 범위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302조는 위계나 위력으로 미성년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경우를 정하고 있습니다.
위력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만한 세력을 말합니다. 폭행이나 협박만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지위, 나이 차이, 보호하거나 감독하는 관계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실제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위력이 부정되지는 않습니다.
나이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나
이 영역에서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상대의 나이입니다. 연령대에 따라 적용되는 조문이 다르고,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이 아예 자리를 잡지 못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 연령 | 판단의 축 | 동의했다는 주장 |
|---|---|---|
| 13세 미만 | 위계나 위력이 없어도 성립 | 의미를 갖지 못함 |
| 13세 이상 16세 미만 | 19세 이상인 사람이 궁박한 상태를 이용했는지 | 통하지 않는 영역이 넓음 |
| 16세 이상 19세 미만 | 위계나 위력이 있었는지, 대가가 오갔는지 | 관계와 경위를 따져 판단 |
13세 미만에 대해서는 형법 제305조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7조가 적용되고, 법정형이 크게 무겁습니다. 13세 이상 16세 미만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의2가 궁박한 상태를 이용한 경우를 따로 정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이를 확인하지 않은 사정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만난 적이 없어도 처벌되나
됩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5조의2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욕망을 유발하는 대화를 반복하거나 성적 행위를 하도록 유인하고 권유하는 것을 처벌합니다. 실제 만남이나 신체 접촉은 요건이 아닙니다.
이 유형에서는 증거가 이미 남아 있습니다. 주고받은 대화 기록 그 자체가 범죄사실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지우더라도 상대방 기기와 서버에 남은 기록으로 복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사 방식도 다릅니다. 같은 법 제25조의2는 아동·청소년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신분을 밝히지 않거나 신분을 위장한 수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사건이 적발되는 주된 경로가 여기입니다.
여기서 자주 나오는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만나자는 말까지는 꺼내지 않았으니 미수에 그친 것 아니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대화와 권유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만남을 전제로 한 논리는 통하지 않습니다.
법원은 무엇을 보고 판단하나
하나의 장면만 떼어 놓고 보지 않습니다. 관계가 시작된 지점부터 문제가 된 시점까지의 전체 경과를 놓고 봅니다.
- 대화가 시작된 경위와 먼저 접근한 쪽이 누구인지
- 나이를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정황
- 금품이나 편의를 제공한 내역과 그 시점
- 관계가 이어진 기간과 연락의 빈도
- 비밀로 하자고 요구한 정황
- 보호하거나 감독하는 지위에 있었는지
마지막 항목은 특히 무겁게 다루어집니다. 교사나 코치, 시설 종사자처럼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고 감독하는 자리에 있으면 그 지위 자체가 위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명시적인 강요가 없었더라도 요건이 채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품이나 편의를 주고 성적 행위를 한 경우에는 성매수 조항이 적용됩니다. 상대가 아동·청소년이라면 동의가 있었더라도 처벌되고 법정형이 높으며, 알선하거나 장소를 제공한 사람도 함께 책임을 집니다. 근거는 같은 법 제13조입니다.
나이를 몰랐다는 주장은 자주 나오지만 문턱이 낮지는 않습니다. 고의가 부정되려면 몰랐다는 데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하고, 학교 이야기가 오갔거나 프로필에 단서가 있었다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우며, 확인하지 않은 태도 자체가 불리한 사정으로 읽힙니다.
피해자 진술과 공소시효
다른 증거가 부족한 사건에서는 진술의 신빙성이 사실상 핵심이 됩니다. 연령과 발달 정도를 함께 고려해 평가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기억이 조금 어긋난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배척되지는 않습니다. 대신 진술이 나오게 된 경위와 최초 진술 시점이 함께 검토됩니다.
절차에도 특칙이 있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에 따라 19세 미만 피해자의 진술은 영상으로 촬영해 보존하고,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곁에 있게 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선정되어 절차 전반을 돕고, 그 비용은 국가가 부담합니다.
시효도 일반 사건과 다릅니다.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진행하고, 일부 중대한 범죄에는 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0조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1조가 이 특례를 두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일이라도 다루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수사가 시작되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가장 먼저 할 일은 지우지 않는 것입니다. 대화 기록과 송금 내역, 접속 기록을 전체 그대로 보존해야 합니다. 일부만 남기면 앞뒤 맥락이 잘려 오히려 불리하게 읽히고, 삭제 행위는 증거인멸로 평가되어 구속 사유가 되기도 합니다.
확인할 것
· 대화방 전체 내보내기 파일과 원본이 남은 기기
· 송금과 결제, 기프티콘 전송 내역
· 계정 접속 기록과 사용한 기기 정보
· 관계의 시작 시점을 보여 주는 초기 기록
· 이미 제출했거나 압수된 자료의 목록
아이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부모가 알게 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추궁부터 하기보다 기록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우선이고, 112 신고와 함께 해바라기센터에서 상담과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유포된 자료가 있다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삭제 지원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학교와 의료기관, 아동복지시설 종사자처럼 신고 의무가 있는 사람은 직무상 알게 된 사실을 신고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책임을 지게 됩니다.
유죄가 되면 무엇이 남나
형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상정보 등록과 공개,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대한 취업제한, 이수명령이 함께 따라옵니다. 취업제한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56조가 정하고 있고, 기간이 길게 정해집니다. 그래서 형량과 별개로 다투어야 할 부분이 남습니다.
합의의 무게도 다릅니다. 아동·청소년이 피해자인 사건에서는 감경의 폭이 좁고, 법정대리인이 합의의 주체가 되더라도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회복 상태가 함께 확인됩니다.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등록이나 취업제한 같은 처분이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등록과 공개, 취업제한은 형을 정하는 절차 안에서 함께 다루어집니다. 선고가 난 뒤에 따로 풀어 달라고 다투기는 훨씬 어렵기 때문에, 그 범위와 기간에 관한 주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해 두어야 합니다.
정리
이 유형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가 수단이 됩니다. 그래서 위계와 위력이라는 요건으로 판단하고, 판단 자료는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전체 경과입니다.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은 연령에 따라 아예 의미를 갖지 못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만난 적이 없어도 대화만으로 성립하는 조항이 따로 있다는 점, 그리고 보호하거나 감독하는 지위에 있었다면 그 자리 자체가 위력으로 읽힌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시효 역시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진행하므로 시간이 지났다는 사정만 믿기는 어렵습니다.
유죄가 되면 형으로 끝나지 않고 등록과 취업제한이 함께 남는다는 점도 미리 계산에 넣어야 합니다.
어느 입장이든 첫 단계는 같습니다. 대화 기록 전체를 손대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참조 조문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8조의2, 제13조, 제15조의2, 제20조, 제25조의2, 제56조 · 형법 제302조, 제305조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7조, 제21조, 제30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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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신체 접촉이 없었는데도 처벌되나요?
됩니다. 정보통신망을 통해 성적 대화를 반복하거나 유인·권유한 경우 그 자체로 처벌하는 조항이 있습니다.
상대가 동의했다면 문제가 없나요?
13세 미만은 동의와 무관하게 처벌됩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도 동의가 있어도 처벌되며, 위계나 위력이 인정되면 마찬가지입니다.
나이를 몰랐다고 하면 인정되나요?
몰랐다는 데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학교 이야기나 프로필에 단서가 있었다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오래된 사건도 처벌할 수 있나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는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되며, 일부 중대 범죄는 시효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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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정식 상담을 통해 확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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