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이 끝난 밤 11시 50분 무렵, 같은 방향이라며 거래처 과장이 먼저 택시 뒷문을 열었습니다. 출발하고 10분쯤 지나 그의 손이 허벅지 위로 올라왔고, 몸을 창문 쪽으로 붙여도 손은 다시 따라왔습니다. 집 앞에서 내린 32세 E씨에게 남은 것은 휴대폰 속 0시 41분에 찍힌 18,000원짜리 카드 승인 문자 한 통뿐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E씨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그 차 안에 블랙박스가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질문이고, 시간이 많지 않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차 안에서 허벅지를 만진 것도 강제추행인가
형법 제298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사람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조문만 보면 때리거나 위협하는 장면이 먼저 있어야 할 것처럼 읽힙니다.
실무에서는 상대가 대비할 틈도 없이 갑자기 몸을 만지는 행위 자체를 폭행으로 보아 강제추행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한 뒤에도 손이 다시 따라왔다면 의사에 반했다는 점은 더 분명해집니다.
남는 문제는 증명입니다. 뒷좌석에는 두 사람뿐이었고, 상대는 술김에 몸이 기울었을 뿐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큽니다. 둘의 말이 엇갈리는 사건에서는 그 말을 받쳐 줄 바깥의 기록이 승부를 가릅니다. 차 안을 찍은 영상, 차를 특정하는 결제 기록, 사건 직후의 메시지가 그것입니다.
블랙박스 영상은 누가 갖고 있고 언제까지 남나
택시 블랙박스는 차량 주인의 것입니다. 개인택시면 기사 본인이, 법인택시면 운수회사가 관리합니다. 실내를 비추는 카메라가 달린 차량도 있고 앞만 찍는 차량도 있으니, 영상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문제는 저장 방식입니다.
대부분의 블랙박스는 메모리가 차면 오래된 영상부터 덮어씁니다. 하루에 몇 시간을 달리는 영업용 차량이라면 그 주기가 짧을 수 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는 사이 그 밤의 영상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피해자가 회사에 영상을 내놓으라고 강제할 권한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운수회사나 기사에게 그 시간대 영상을 지우지 말아 달라고 보존을 부탁하는 것, 그리고 곧바로 경찰에 알려 수사기관이 확보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법경찰관은 소유자나 보관자가 임의로 내놓은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고, 내놓지 않으면 영장을 받아 확보합니다.
어느 차였는지 무엇으로 특정하나
영상을 찾으려면 먼저 차를 찾아야 합니다. 그 밤의 흔적은 생각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 남아 있는 흔적 | 보여 주는 것 | 어디서 얻나 |
|---|---|---|
| 카드 승인 문자ㆍ결제 내역 | 승인 시각, 가맹점 이름, 금액 | 본인 카드사 앱, 상대가 결제했다면 수사기관 조회 |
| 택시 호출 앱 이용 기록 | 차량 번호, 기사, 출발ㆍ도착 지점과 경로 | 호출한 사람의 앱 이력 |
| 종이 영수증 | 차량 번호나 사업자 정보 | 지갑, 주머니, 가방 |
| 내 휴대폰 위치 기록 | 이동 시간대와 경로 | 휴대폰 설정의 위치 기록 |
| 하차 지점 주변 CCTV | 내리는 모습, 함께 내렸는지 여부 | 건물 관리사무소, 수사기관 요청 |
상대가 앱으로 불렀다면 차량 정보는 그의 계정에 있으니, 그에게 직접 물어볼 일은 아닙니다.
고소장에 누가 어느 앱으로 택시를 불렀는지, 몇 시 몇 분쯤 어디서 내렸는지를 적어 두면 수사기관이 그 기록을 조회해 차량을 좁혀 갑니다. 하차 시각이 5분 단위로만 좁혀져도 찾을 범위는 크게 줄어듭니다.
그 밤 직후에 남긴 말도 증거가 되나
됩니다.
내리자마자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 집에 와서 가족에게 한 말, 다음 날 메모장에 적은 기록은 사건 직후의 반응을 보여 줍니다. 상대가 나중에 꾸민 이야기라고 주장할 때 그 시점이 힘을 발휘합니다.
상대에게서 온 연락도 지우지 마십시오. 어제 많이 취했다, 기억이 안 난다는 식의 메시지는 그 자체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료입니다. 답장으로 따지거나 사과를 받아 내려 하기보다 화면을 그대로 보존하는 편이 낫습니다. 캡처와 함께 대화방 전체를 백업해 두면 앞뒤 맥락까지 남습니다.
오늘 안에 확인할 것
· 카드 승인 문자에 찍힌 시각과 가맹점 이름
· 호출 앱을 쓴 사람이 누구였는지
· 택시회사 이름이나 차량 번호를 기억하는지
· 친구ㆍ가족에게 보낸 메시지가 남아 있는지
· 같은 회식에 있던 사람 중 함께 탄 것을 본 사람
택시 기사는 증인이 될 수 있나
될 수 있습니다. 뒷좌석의 실랑이를 백미러로 보았거나, 하차할 때 피해자의 표정과 말을 기억하는 기사라면 수사기관이 참고인으로 부를 수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직접 기사를 찾아가 진술을 부탁하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상대 측이 증인을 미리 만나 말을 맞췄다고 다툴 빌미가 됩니다. 회사에는 영상 보존만 요청하고, 기사의 기억은 수사기관이 묻도록 두는 것이 깔끔합니다.
고소는 어떤 순서로 하나
- 카드 내역, 메시지, 메모를 날짜순으로 모아 화면을 저장합니다.
- 운수회사에 그 시간대 블랙박스 보존을 전화와 문자로 요청하고, 요청한 시각을 적어 둡니다.
- 경찰서 민원실에 서면이나 말로 고소합니다. 고소는 사법경찰관에게 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 조사 때 블랙박스 보존 요청 사실을 알려 신속한 확보를 요청합니다.
서두를 이유는 증거 쪽에 있습니다. 강제추행은 장기 10년의 죄라 공소시효가 10년이니 고소할 시간 자체는 넉넉합니다. 경찰은 고소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안에 수사를 마치고 검찰 송치 여부를 정해야 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변호사를 선임해 조사에 함께 들어갈 수 있고, 수사와 재판에 관여하는 공무원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누설할 수 없습니다. 거래처 관계라 회사에 알려지는 것이 걱정이라면 이 부분도 변호사와 함께 미리 정리해 두십시오.
정리
택시 안 추행은 목격자가 적은 사건입니다. 그래서 차량 영상이 결정적인 경우가 많고, 그 영상은 덮어쓰기 전에 확보해야 합니다.
순서는 단순합니다. 결제 내역과 호출 기록으로 차를 특정하고, 회사에 보존을 부탁한 뒤, 바로 경찰에 고소해 수사기관이 영상을 거두게 합니다. 그 사이 사건 직후의 메시지와 상대의 연락은 지우지 않고 남겨 둡니다. 며칠의 차이가 증거의 유무를 가릅니다.
참조 조문
형법 제298조 · 형사소송법 제218조, 제237조, 제238조, 제249조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4조, 제27조
본 글이 일반적 안내였다면, 본인 사안은 사실관계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론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 중이시라면 정식 상담을 권합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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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상대가 결제했고 저는 영수증도 없습니다. 차를 찾을 수 있나요?
하차 시각과 장소를 최대한 정확히 적어 고소하시면 됩니다. 결제 정보와 호출 기록은 상대의 계정에 남아 있으므로 수사기관이 조회할 수 있습니다. 내 휴대폰의 위치 기록도 시간대를 좁히는 데 쓰입니다.
블랙박스가 이미 지워졌다면 사건이 안 되나요?
영상이 없어도 사건은 됩니다. 사건 직후 보낸 메시지, 상대가 보낸 연락, 기사나 동료의 진술, 하차 지점 CCTV가 함께 판단 자료가 됩니다. 영상은 강력한 증거일 뿐 유일한 증거는 아닙니다.
거래처 사람이라 회사에 알려질까 걱정됩니다.
수사와 재판을 맡은 공무원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나 사생활의 비밀을 누설할 수 없고, 누구든지 동의 없이 이를 공개해서는 안 됩니다. 회사에 알릴지와 그 시점은 변호사와 상의해 정하시면 됩니다.
상대가 사과하고 싶다며 연락해 옵니다.
답하지 않고 기록만 남겨 두십시오. 사과나 합의 이야기는 변호사를 통해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직접 대화하면 그 내용이 나중에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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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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