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딸의 휴대전화에서 낯선 남자와 찍은 사진을 본 어머니는 처음엔 같은 학교 선배인 줄 알았습니다. 채팅 앱에서 만난 그는 스무 살 대학 새내기라고 했고, 프로필에는 앳된 얼굴 사진과 학교 이름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두 달 동안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만나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그 뒤 우연히 본 신분증에는 서른네 살로 적혀 있었습니다. 때리지도 위협하지도 않았는데, 나이와 신분을 속인 것만으로 죄가 되는지를 따져 보겠습니다.
무엇이 쟁점인가
이 사건에는 강간죄의 수단인 폭행이나 협박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두 사람이 만나 합의하에 관계를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상대 남성도 아마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은 그 빈자리를 겨냥합니다. 위계 또는 위력으로 아동ㆍ청소년을 간음한 사람은 같은 조 제1항의 예에 따르는데, 제1항의 형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폭행으로 강간한 경우와 형의 폭이 같습니다.
결국 다툼은 한 단어로 모입니다. 나이와 신분을 속인 것이 위계에 해당하느냐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사건을 중죄로 만들기도 하고, 처벌하기 어려운 일로 남겨 두기도 합니다.
위계는 어디까지를 가리키나
위계
상대에게 오인이나 착각, 모르는 상태를 만들어 내고 그 상태를 이용해 목적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간음의 수단으로서 위계는 폭행ㆍ협박 없이도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을 왜곡하는 방법을 포착하기 위한 개념입니다.
예전에는 속인 내용이 성행위 그 자체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좁게 보는 시각이 강했습니다. 예컨대 치료라고 속여 성행위를 한 경우처럼 무슨 행위인지 자체를 착각하게 한 경우만 위계라고 보는 식입니다.
그 뒤 해석이 넓어졌습니다. 실무에서는 속인 내용이 성행위의 동기에 관한 것이더라도, 그 거짓이 성관계를 결심하게 한 중요한 이유였다면 위계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판단 능력이 아직 무르익지 않은 청소년이 상대라면 그 점을 무겁게 봅니다.
그렇다고 나이를 몇 살 줄였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유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이를 속인 것만으로 충분한가
수사기관과 법원이 살피는 지점은 대체로 네 가지입니다.
- 속임의 정도: 말로 한 번 둘러댄 것인지, 가짜 사진과 학교, 친구 계정까지 만들어 낸 것인지
- 피해자의 사정: 나이, 성 경험, 그 관계에서 무엇을 기대했는지
- 연결: 사실을 알았다면 만나거나 관계를 갖지 않았을 것인지
- 이용: 상대가 그 착각을 알면서 관계로 끌고 갔는지
사례의 남성은 두 달 동안 대학생 행세를 이어 갔고 사진과 학교까지 꾸며 냈습니다. 또래라는 믿음이 만남과 관계를 받아들이게 한 핵심이었다면 위계로 볼 근거가 상당합니다. 반대로 피해 학생이 만나기 전 이미 나이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나오면 결론은 흔들립니다. 그래서 대화 기록 전체가 중요해집니다.
딸의 나이가 한두 살만 달랐다면
같은 일이라도 피해자가 몇 살이냐에 따라 적용 법률이 크게 바뀝니다.
| 피해자 나이 | 위계가 인정되면 | 위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
|---|---|---|
| 13세 미만 | 성폭력처벌법 제7조 제5항, 무기 또는 10년 이상 | 형법 제305조 제1항, 동의와 무관하게 강간의 예 |
| 13세 이상 16세 미만 |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 무기 또는 5년 이상 | 상대가 19세 이상이면 형법 제305조 제2항, 강간의 예 |
| 16세 이상 19세 미만 | 청소년성보호법 제7조 제5항, 무기 또는 5년 이상 | 간음 자체로는 처벌 근거가 마땅치 않음 |
사례의 딸은 열일곱 살이라 표의 마지막 줄에 해당합니다. 위계가 인정되느냐에 따라 무거운 중죄냐, 처벌이 어려운 사건이냐가 갈립니다.
다만 마지막 줄에서도 다른 조문이 남아 있습니다. 성인이 성적 착취를 노리고 청소년을 상대로 야한 대화를 이어 갔다면, 간음과 별개로 제15조의2의 성착취 목적 대화죄가 걸릴 수 있습니다. 금품이나 선물이 오갔다면 성을 사는 행위인지도 함께 검토됩니다.
입증은 무엇으로 하나
이 사건은 거의 전부가 기록으로 다투어집니다. 가장 먼저 지킬 것은 채팅 앱의 대화 전체입니다. 상대가 계정을 지우면 서버에서 되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화면 캡처와 내보내기를 바로 해 두어야 합니다.
프로필 사진의 출처도 확인 대상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가져다 쓴 것이라면 속임의 계획성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됩니다.
상대 쪽은 대개 두 갈래로 방어합니다. 하나는 나이를 밝혔는데 피해자가 개의치 않았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 호감이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두 주장 모두 대화 기록 속 특정 시점의 말 한마디로 무너지거나 살아납니다. 만남 직전 며칠의 대화가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피해 학생의 진술은 청소년성보호법 제26조에 따라 영상녹화되고 보존됩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하게 하지 않으려는 장치입니다. 집에서 부모가 세세하게 캐묻는 것은 오히려 진술을 흔들 수 있으니 피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가족은 어떤 순서로 움직이면 되나
- 대화 기록과 사진, 상대 계정 정보를 저장하고 휴대전화를 초기화하지 않습니다.
- 경찰에 신고하면서 상대가 나이와 신분을 어떻게 속였는지를 정리해 전달합니다.
- 피해 학생과 법정대리인은 제30조에 따라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호사가 없으면 검사가 국선변호사를 선정해야 합니다.
- 상대가 연락해 오면 답하지 말고 그 기록을 그대로 보관합니다.
시간에 쫓길 필요는 없습니다. 제20조 제1항에 따라 이런 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진행합니다. 그래도 기록은 빨리 사라지니 보존은 미루지 마십시오.
정리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어도 나이와 신분을 꾸며 청소년의 결심을 끌어냈다면 위계에 의한 간음이 문제 됩니다. 핵심은 그 거짓이 관계를 받아들이게 한 중요한 이유였는지입니다.
열여섯 살 이상이라면 위계 인정 여부가 사건 전체를 좌우합니다. 꾸민 사진과 학교, 대화의 흐름을 빠짐없이 남기는 것이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참조 조문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제15조의2, 제20조, 제26조, 제30조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7조, 제27조 · 형법 제302조, 제305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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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는데도 강간과 같은 형이 될 수 있나요?
될 수 있습니다. 청소년을 속임수로 간음한 경우를 폭행에 의한 강간과 같은 줄에 세워 둔 것이 제7조 제5항의 구조입니다. 위계만 인정되면 형의 하한도 똑같이 5년입니다.
딸이 먼저 만나자고 했다면 결론이 달라지나요?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보다, 상대의 거짓이 만남과 관계를 받아들이게 한 중요한 이유였는지가 중심입니다. 다만 대화 흐름 전체가 판단 자료가 되므로 기록을 빠짐없이 보존하셔야 합니다.
상대가 나이를 몰랐다고 하면 어떻게 되나요?
이 사안에서 상대는 피해자의 나이를 알면서 자기 나이를 속인 쪽입니다. 피해자가 청소년이라는 점을 알았는지는 대화 내용과 학교 이야기 등으로 확인됩니다.
지금 바로 신고하지 않으면 시효가 지나나요?
청소년성보호법 제20조 제1항에 따라 아동ㆍ청소년대상 성범죄의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진행합니다. 다만 대화 기록과 계정은 금방 사라질 수 있어 보존은 서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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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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