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금을 건네고 상대방이 직접 쓴 고소 취하서를 경찰서에 낸 다음 날, 담당 수사관에게서 2차 조사 날짜를 잡자는 전화가 왔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취하서가 접수됐는데 왜 조사를 또 하느냐고 물었더니 수사관은 이 사건은 그렇게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고만 답했다고 합니다. 강간 혐의는 피해자가 고소를 거두어도 수사와 재판이 멈추지 않는 범죄입니다. 취하서가 어디까지 힘을 쓰고 어디서부터 힘을 잃는지, 그렇다면 합의가 무슨 뜻을 갖는지, 양쪽이 각각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짚어 봅니다.
취하서를 냈는데 왜 조사가 이어지나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를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정합니다. 이 조문 어디에도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있었습니다.
강간을 비롯한 성범죄 여럿을 친고죄로 묶어 두던 조문이 형법 제306조였는데, 지금 그 자리는 삭제라는 두 글자만 남아 있습니다.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스스로 수사를 시작할 수 있고, 고소를 거두어도 그 사건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피해자의 뜻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바뀐 것도 아니어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서면을 내도 사건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수사관의 답은 그래서 틀리지 않았습니다.
고소 취소가 사건을 끝내는 범죄는 따로 있다
형사소송법 제232조는 고소를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다고 하고, 한 번 취소한 사람은 다시 고소하지 못한다고 못 박습니다.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는 뜻을 철회한 때에도 같은 규정이 준용됩니다.
이 조문이 실제로 사건을 끝내는 자리는 제327조입니다.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건에서 고소가 취소된 경우, 그리고 피해자의 뜻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거나 철회한 경우에 법원은 판결로 공소를 기각합니다.
강간은 이 두 갈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 구분 | 고소 취하서의 힘 | 근거 |
|---|---|---|
| 친고죄 | 1심 판결 선고 전에 취소하면 공소기각 판결 |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 제327조 |
| 반의사불벌죄 |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 공소기각 판결 |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3항, 제327조 |
| 강간 등 성폭력범죄 | 수사·재판은 계속, 양형 자료로만 작동 | 형법 제297조, 제306조 삭제 |
그렇다면 취하서는 휴지 조각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건을 끝내지 못할 뿐, 결과의 무게를 바꾸는 자료로는 꽤 큰 역할을 합니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할 때 피해자에 대한 관계와 범행 후의 정황을 반드시 참작하도록 합니다. 피해 회복과 처벌불원 의사는 바로 이 범행 후의 정황에 해당합니다. 제53조는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으면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하고, 제62조는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경우에 집행유예를 열어 둡니다.
강간의 법정형 하한은 3년입니다. 감경을 거치지 않으면 집행유예가 가능한 범위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피해 회복 여부는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지점에서 자주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검사 단계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7조는 검사가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합니다. 다만 법정형이 무거운 범죄에서 이 재량이 넓게 쓰이는 일은 드물다고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고소 취하서와 처벌불원서
고소 취하서는 고소라는 소송행위를 거두는 서면이고, 처벌불원서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의사를 적은 서면입니다.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에서는 각각 사건을 끝내는 효력을 갖지만, 강간 사건에서는 둘 다 양형 자료로 흡수됩니다. 어느 이름으로 내든 1심 판결 선고 전에 제출돼야 재판부가 참작할 수 있습니다.
취하서는 어디에 어떤 형식으로 내나
형사소송법 제237조는 고소를 서면 또는 구술로 사법경찰관에게 하도록 정하고, 제239조는 이 방식을 고소의 취소에도 준용합니다. 수사 단계라면 사건을 맡은 경찰서에 서면으로 내는 것이 보통이고, 구술로 하면 수사관이 서류를 작성합니다.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간 뒤라면 재판부에 냅니다.
어느 단계든 피해자 본인이 작성했다는 점이 드러나야 합니다. 서명과 신분 확인 서류를 붙이고, 가능하면 피해자가 직접 또는 피해자 변호사를 통해 제출하는 편이 뒤탈이 없습니다. 피의자 쪽이 대신 들고 가는 서면은 작성 경위를 의심받기 쉽습니다.
피의자 쪽이 합의 뒤에 챙길 것
취하서 한 장으로 끝났다고 여기고 2차 조사를 가볍게 보는 일이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사건은 그대로 살아 있고, 조사에서 한 말은 그대로 기록으로 남습니다.
- 합의서에 피해 회복 내용과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함께 적어 둡니다
- 합의금 이체 내역과 작성 일자가 확인되는 자료를 보관합니다
- 2차 조사 전에 1차 진술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달라질 부분이 있는지 점검합니다
- 피해자에게 추가로 연락하지 않습니다. 합의 뒤의 접촉은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합의 사실은 변호인 의견서에 담아 기록에 넣어 두십시오.
피해자 쪽이 알아 두어야 할 것
취하서를 썼다고 해서 진술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소를 거두는 것과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고, 후자는 또 다른 형사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취하서를 낸 뒤에도 피해자 변호사의 조력은 이어집니다.
성폭력처벌법 제18조는 성폭력범죄에 한해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도록 형사소송법의 고소 제한을 풀어 두었습니다. 가족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 고소 자체를 망설이던 분이라면 이 조문이 출발점이 됩니다. 합의 과정에서 압박을 느꼈다면 그 사정 역시 기록으로 남기는 편이 좋습니다.
주의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은 고소를 취소한 사람이 다시 고소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강간처럼 고소가 요건이 아닌 범죄에서는 수사 자체가 막히지 않지만, 취하서는 한 번 내면 되돌리기 어려운 문서로 취급됩니다. 합의 조건이 다 이행되기 전에 서면을 먼저 내주는 일은 피하십시오.
정리
강간은 고소가 요건이 아닌 범죄라 취하서를 내도 수사와 재판은 그대로 이어집니다. 고소 취소로 사건이 끝나는 것은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뿐이고, 그 효과는 형사소송법 제327조의 공소기각 판결로 나타납니다.
대신 취하서와 합의는 양형 자료로 살아남습니다. 법정형 하한이 3년인 범죄에서 감경 사유가 있고 없고는 실형과 집행유예를 가르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피의자라면 합의 뒤에도 조사를 가볍게 보지 말고 기록을 챙기셔야 하고, 피해자라면 취하서가 진술 번복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어느 쪽이든 성범죄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와 서면의 시점과 내용을 먼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법 제51조, 제53조, 제62조, 제297조, 제306조 ·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37조, 제239조, 제247조, 제327조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8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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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피해자가 고소 취하서를 냈는데도 경찰이 출석을 요구합니다. 거부해도 되나요?
강간은 고소가 없어도 수사할 수 있는 범죄라 취하서로 사건이 끝나지 않습니다. 출석 요구는 그대로 유효하므로 변호인과 함께 조사에 응하시고, 합의 사실은 의견서로 기록에 남기십시오.
취하서는 언제까지 내야 재판에서 참작되나요?
형사소송법 제232조는 고소 취소의 시한을 제1심 판결 선고 전으로 정합니다. 양형 자료로 쓰이는 경우에도 변론이 끝나기 전에 제출돼야 재판부가 형법 제51조의 사정으로 살필 수 있습니다.
합의하면 집행유예가 나오나요?
보장되지 않습니다. 강간의 법정형 하한이 3년이라 형법 제53조의 감경을 거쳐야 제62조의 집행유예 범위에 들어갈 수 있고, 감경 여부는 범행 경위와 전과 등 다른 사정과 함께 판단됩니다.
피해자인데 취하서를 썼다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고소할 수 있나요?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은 고소를 취소한 사람의 재고소를 막습니다. 다만 강간은 고소가 요건이 아니어서 수사기관이 사건을 계속 진행하므로, 다시 고소하지 않아도 진술과 증거 제출로 절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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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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