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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정보2026년 10월 9일조회 0

약만 사 두고 실행은 안 했어도 벌을 받나

택배 상자는 뜯지도 않은 채 책상 서랍에 들어 있었습니다. 해외 판매 사이트를 수사하던 경찰이 구매자 명단을 넘겨받았고, 서른한 살 회사원 A씨의 이름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압수된 휴대폰에는 약이 도착하기 이틀 전 친구와 나눈 대화가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주 모임에서 한 동료에게 이 약을 먹이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A씨는 약을 쓴 적도, 그 동료를 따로 만난 적도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처벌도 없는 것일까요.

일어나지 않은 범죄도 처벌 대상이 되나

형법의 출발점은 반대쪽에 있습니다. 범죄를 준비하거나 모의했더라도 실행에 착수하지 않았다면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생각이나 준비만으로는 대부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성범죄 가운데 일부는 이 원칙의 예외로 묶여 있습니다. 2020년 5월 형법에 강간 등의 예비ㆍ음모를 처벌하는 조문이 새로 들어갔고, 같은 무렵 성폭력처벌법과 청소년성보호법에도 비슷한 규정이 생겼습니다. 이 조문들이 정한 형은 모두 3년 이하의 징역입니다.

벌금형은 선택지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결과가 없었다는 사실보다, A씨가 한 일이 법이 말하는 준비에 해당하는지와 그 준비가 어떤 죄를 향한 것이었는지가 먼저 따져집니다.

어떤 죄를 목표로 한 준비여야 처벌되나

모든 성범죄의 준비가 처벌되는 것은 아닙니다. 형법은 목표가 된 죄를 하나하나 적어 두었고, 그 목록에서 빠진 죄를 노린 준비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준비의 목표가 된 죄예비ㆍ음모 처벌근거
강간, 유사강간처벌 (3년 이하 징역)형법
준강간 (심신상실ㆍ항거불능 이용 간음)처벌형법
준강제추행, 강제추행형법상 처벌 규정 없음목록에서 제외
강간 등 상해 (고의로 다치게 하는 경우)처벌형법, 치상은 제외
13세 미만 등 미성년자 간음ㆍ추행처벌형법
특수강간, 친족관계ㆍ장애인ㆍ13세 미만 대상 강간 등처벌 (3년 이하 징역)성폭력처벌법
19세 미만 아동ㆍ청소년 대상 강간ㆍ강제추행 등처벌 (3년 이하 징역)청소년성보호법

표에서 눈여겨볼 곳은 세 번째 줄입니다. 약을 먹여 잠든 사람을 추행할 목적이었다면 형법의 예비ㆍ음모 조문이 걸리지 않습니다. 반면 같은 약으로 간음을 노렸다면 준강간의 예비가 됩니다. 목표가 성인 대상 강제추행이냐, 청소년 대상 강제추행이냐에 따라서도 결론이 갈립니다.

약을 산 것만으로 예비가 되나

예비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특정한 죄를 저지르겠다는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외부적 준비행위입니다.

수면제나 진정제는 그 자체로 여러 용도가 있습니다. 불면 때문에 샀다는 설명이 가능하고, 구매 기록 하나만으로 성범죄의 목적까지 읽어 내기는 어렵습니다. 수사기관이 목적을 입증하려고 모으는 자료는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 구매 전후의 검색 기록 (약 이름과 함께 특정 표현을 찾아본 흔적)
  • 대상을 특정한 대화나 메모
  • 약이 도착한 시점과 모임, 약속 날짜의 관계
  • 대상과 단둘이 있을 장소나 숙소를 알아본 기록

A씨 사건에서 무게가 실리는 것은 약보다 대화입니다. 대상과 시점까지 적어 둔 메시지가 있다면 목적은 상당 부분 드러난 셈이고, 다툼은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허세였는지로 옮겨 갑니다.

준비는 어디서 끝나고 실행은 어디서 시작되나

예비와 미수를 가르는 선은 실행의 착수입니다. 약을 사서 보관하는 단계는 준비입니다. 약을 음료에 섞어 상대에게 건네는 순간부터는 실행에 착수했는지가 다퉈질 수 있고, 착수로 평가되면 이제 예비가 아니라 준강간 미수 등의 문제가 됩니다.

이 차이는 형에서 크게 벌어집니다.

예비ㆍ음모는 상한이 3년인 징역형입니다. 준강간은 강간의 예에 따르므로 기수라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 되고, 미수라도 같은 형의 범위 안에서 감경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편 실행에 착수한 뒤 스스로 그만두면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중지범 규정이 있지만, 이는 착수 이후를 전제로 한 제도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십시오.

대화만 나눈 친구도 책임을 지나

두 사람 이상이 특정한 죄를 함께 저지르기로 의사를 맞춘 것을 음모라고 합니다. 예비와 같은 조문으로 처벌되므로, 계획을 함께 세운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친구가 맞장구만 쳤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보태거나 약을 구해 주었는지는 사정이 다릅니다. 농담처럼 받아넘긴 대화와 실행 방법을 함께 짠 대화는 같은 무게로 읽히지 않습니다.

반대로 A씨가 친구에게 대신 해 달라고 부추겼다면 교사의 문제가 됩니다. 형법은 교사를 받은 사람이 실행을 승낙하고 착수하지 않은 때, 그리고 아예 승낙하지 않은 때에도 교사한 사람을 예비ㆍ음모에 준하여 처벌합니다. 부탁을 거절당했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수사를 받게 되었다면, 또 계획의 대상이었다면

출석 요구서를 받았다면 조사 날짜 전까지 아래 네 가지를 챙겨 두십시오.

  1. 약을 산 경위와 시점을 사실대로 적습니다. 처방을 받은 적이 있거나 다른 용도가 있었다면 그 자료를 모읍니다.
  2. 문제의 대화 앞뒤 맥락을 확인합니다. 일부만 떼어 보면 뜻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3. 휴대폰 기록을 지우지 않습니다. 삭제는 목적을 숨기려 한 정황으로 읽힙니다.
  4. 대상으로 언급된 사람에게 연락해 해명하지 않습니다. 설명은 조사실에서 변호인과 함께 합니다.

구입한 약이 향정신성의약품이라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이 따로 검토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해 두어야 합니다.

자신이 계획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도 할 일이 있습니다. 대화 캡처나 전해 들은 경위를 날짜와 함께 보관하고, 고소는 경찰에 서면이나 말로 하면 됩니다. 경찰은 고소장을 접수하면 원칙적으로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끝내고 검찰로 보낼지 결정해야 합니다. 불안이 크다면 고소와 함께 신변 안전 조치를 요청해 두십시오.

확인할 것
· 준비의 목표가 된 죄가 예비ㆍ음모 처벌 목록에 있는가
· 목적을 보여 주는 대화나 기록이 있는가, 그 맥락은 무엇인가
· 약을 건네는 등 실행에 착수한 장면이 있었는가
· 약 자체의 취급이 별도로 문제되지 않는가

정리

성범죄는 결과가 없어도 처벌될 수 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강간, 유사강간, 준강간, 미성년자 간음ㆍ추행 등을 목표로 준비하거나 모의했다면 실행 전이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 가능합니다.

관건은 목적입니다.

약을 산 사실보다 그 약을 누구에게 어떻게 쓰려 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 사건을 좌우합니다. 수사를 받는 쪽은 기록을 보존한 채 경위를 정리해 변호인과 방향을 정하시고, 대상이 된 쪽은 자료를 모아 경찰에 알리고 안전 조치부터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법 제25조, 제26조, 제28조, 제31조, 제297조, 제297조의2, 제299조, 제301조, 제305조, 제305조의3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5조의2 ·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의2 · 형사소송법 제237조, 제238조

관련 안내: 부산 성범죄변호사 · 성범죄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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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약을 샀지만 쓰지 않고 버렸습니다. 그래도 예비죄가 되나요?

예비죄는 준비행위가 있었던 시점에 이미 성립할 수 있으므로 나중에 버렸다는 사정만으로 없던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목적이 입증되어야 하고, 스스로 포기한 경위는 양형이나 목적 판단에서 참작될 수 있습니다.

강제추행을 계획만 했다면 처벌되나요?

형법의 예비ㆍ음모 조문에는 성인 대상 강제추행과 준강제추행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상대가 19세 미만이면 청소년성보호법의 예비ㆍ음모 규정이, 특수강제추행처럼 성폭력처벌법이 정한 죄라면 그 법의 규정이 검토됩니다.

친구가 농담으로 한 말을 신고해도 되나요?

신고 여부는 본인이 판단할 일이지만, 대상과 시점, 방법이 구체적으로 적힌 대화라면 수사기관에 알려 판단을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 대화 원본을 보존하고 받은 경위를 함께 설명하시면 됩니다.

예비죄로 벌금형을 받을 수도 있나요?

강간 등의 예비ㆍ음모 조문은 형을 3년 이하의 징역으로만 정하고 있어 벌금형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선고유예나 집행유예 여부는 사건의 정상에 따라 법원이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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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8

대표 변호사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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