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가 끝나고 법정을 나오는데 변호인이 판결문의 한 줄을 짚어 주었습니다.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하지 아니한다는 문장이었습니다. 벌금형은 그대로였고 이수명령도 붙었지만,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그에게는 이 한 줄이 직장을 지키는 선고였습니다. 성범죄 판결에는 취업제한 명령이 함께 붙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조문은 그 원칙을 비켜 갈 문을 하나 열어 두었고, 그 문을 지난 판결이 실제로 나옵니다. 어떤 사정이 그 문을 열었는지, 재판부가 무엇을 보았는지를 조문의 구조를 따라 분석해 봅니다.
원칙은 선고, 예외는 단서에 있다
청소년성보호법 제56조 제1항은 법원이 성범죄로 형이나 치료감호를 선고하는 경우에 취업제한 명령을 판결을 내리면서 함께 선고하도록 적었습니다. 하여야 한다는 표현이라 재판부가 고를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약식명령에도 고지 형태로 붙습니다.
단서가 문입니다.
다시 범할 위험이 뚜렷하게 낮다고 보이거나, 취업을 막아서는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면 명령을 붙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사람에 관한 판단이고 뒤의 것은 사정에 관한 판단입니다. 변론은 이 두 갈래 가운데 어느 쪽을 겨냥하는지부터 정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조문 끝의 개정 기록에는 이 조 제1항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받아 개정됐다는 사실이 적혀 있습니다. 일률적으로 붙이던 구조가 깨지고 사건마다 판단하는 구조로 바뀐 흔적이 단서입니다.
재범의 위험성이 낮다는 말은 누가 증명하나
조문은 증명 책임을 적어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칙이 선고이고 예외가 면제라면, 예외를 바라는 쪽이 자료를 내는 구조로 흘러갑니다.
제56조 제3항이 그 통로를 열어 둡니다. 법원은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하려는 경우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학자, 그 밖의 관련 전문가에게 대상자의 재범 위험성 등에 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 재판부가 직권으로 들을 수도 있지만, 피고인 쪽이 먼저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 제출하면 재판부가 판단할 재료가 생깁니다.
결론만 적힌 소견은 힘이 약합니다. 어떤 검사 도구를 썼는지, 범행 경위를 어떻게 보았는지, 치료나 상담이 이어지고 있는지가 담긴 평가라야 합니다.
현저히 낮은 재범 위험성
단순히 초범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범행의 성격,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이후의 태도, 전문가 평가를 종합해 다시 같은 유형의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뚜렷하게 낮다고 볼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현저히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 어중간한 사정으로는 닿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정이 실제로 작동했나
단서의 두 갈래에 맞춰 변론에서 쓰이는 재료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하나만으로 결론이 나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여럿이 겹쳐야 문이 열립니다.
| 갈래 | 주장의 뼈대 | 뒷받침 자료 |
|---|---|---|
| 재범 위험성 | 우발적 1회 범행, 아동·청소년과 무관한 성인 피해, 전과 없음 | 전문가 평가서, 치료·상담 기록, 범행 경위 자료 |
| 직업과의 거리 | 업무가 아동·청소년을 상대하지 않거나 접촉 구조가 없음 | 근무 형태·업무 범위 확인서, 사업장 구조 자료 |
| 생계와 가족 | 제한이 붙으면 자격 자체를 쓰지 못해 부양이 끊김 | 자격증, 소득 자료, 부양가족 관계 자료 |
| 범행 후 태도 | 피해 회복, 자발적 치료 참여, 진지한 반성 | 합의서, 치료 참여 확인서, 반성문 |
표의 두 번째 갈래가 자주 승부처가 됩니다. 제56조 제1항 각 호에는 의료기관이 들어 있지만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같은 직역으로 한정돼 있고, 공동주택 관리사무소와 경비업 법인은 경비 업무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만 잡습니다. 자신의 일이 조문의 어느 칸에 해당하는지, 해당한다면 실제 업무가 아동·청소년과 어떻게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변론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전부 면제가 어렵다면 기간을 줄일 수 있나
있습니다. 제56조 제2항은 취업제한 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만 정했을 뿐 하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그 안에서 기간을 정합니다.
그래서 변론은 두 단계로 짭니다.
- 단서에 해당해 명령 자체를 선고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앞세웁니다
-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재범 위험성과 직업 사정을 들어 기간을 짧게 정해 달라는 주장을 뒤에 둡니다
두 번째 주장을 꺼내지 않는 변론이 더러 있습니다. 면제가 어렵다고 보는 사건에서 기간 주장이 없으면 긴 기간이 그대로 붙습니다. 기간은 형의 집행이 끝나거나 유예·면제된 날부터, 벌금형이면 확정된 날부터 셉니다.
이수명령이나 공개명령과는 따로 판단된다
제21조 제2항은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로 유죄를 선고할 때 500시간의 범위에서 수강명령이나 이수명령을 병과하도록 하고, 제49조는 등록정보 공개명령을 함께 선고하도록 하면서 각각 특별한 사정이라는 예외를 둡니다.
문구가 닮았다고 결론이 묶이지는 않습니다.
공개명령이 빠졌다고 취업제한까지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처분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취업제한은 아동·청소년이 있는 공간에서 사람을 떼어 놓는 장치이므로, 변론도 그 공간과 피고인의 거리에 집중할 때 효과가 있습니다. 반성이나 피해 회복은 공통 재료이지만 직업과 접촉 구조에 관한 자료는 따로 필요합니다.
명령이 붙으면 뒤에 무엇이 따라오나
제57조는 관계 기관의 장이 명령을 받은 사람의 취업 여부를 연 1회 이상 점검하도록 하고, 제58조는 기간 중 취업자가 발견되면 기관의 장에게 해임을, 운영자라면 폐쇄를 요구할 수 있게 합니다.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1개월 안에 이행하지 않은 기관의 장은 제67조의 과태료 대상입니다.
채용 단계도 막힙니다.
제56조 제5항은 기관의 장이 취업자의 성범죄 경력을 확인하도록 하므로, 명령이 붙은 사람은 지원 단계에서 회신서로 드러납니다. 숨어서 일하는 길은 사실상 없습니다.
확인할 것
· 자신의 직업이 제56조 제1항 각 호의 어느 칸에 들어가는지
· 실제 업무에서 아동·청소년과 접촉하는 구조가 있는지
· 전문가의 재범 위험성 평가를 선고 전에 받을 수 있는지
· 치료나 상담을 이미 시작했고 그 기록이 있는지
· 면제 주장과 기간 단축 주장이 변론에 모두 들어 있는지
정리
취업제한 명령은 성범죄 판결에 원칙적으로 붙지만, 제56조 제1항 단서는 다시 범할 위험이 뚜렷하게 낮거나 취업을 막아서는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명령을 빼도록 길을 열어 두었습니다. 그 길을 여는 재료는 전문가의 재범 위험성 평가, 직업과 아동·청소년 사이의 거리를 보여 주는 자료, 자격을 잃으면 생계가 끊긴다는 사정입니다.
면제가 어렵다면 10년 상한 안에서 기간을 줄이는 주장을 반드시 함께 두어야 합니다.
이수명령이나 공개명령과는 따로 판단되므로 취업제한에 맞는 자료를 따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명령이 붙은 뒤에는 점검과 해임 요구가 따라오니, 선고 전에 이 분야 사건을 맡아 본 변호사와 어떤 자료를 언제 낼지 정해 두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21조, 제49조, 제56조, 제57조, 제58조, 제67조
이 유형의 사건은 초기 대응 시점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시간이 지난 뒤 후회하시기보다, 의문이 생기는 그 시점에 변호사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한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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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합의까지 마친 초범입니다. 취업제한이 빠질 수 있나요?
초범과 합의는 재료의 일부일 뿐입니다. 제56조 제1항 단서가 면제를 허용하는 것은 다시 범할 위험이 뚜렷하게 낮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이므로, 전문가 평가와 직업·접촉 구조에 관한 자료를 더해 그 요건을 보여야 합니다.
제 직업이 조문의 기관 목록에 없는데도 명령이 붙나요?
명령은 목록에 적힌 기관에서 일하거나 운영하는 것을 막는 처분이라 현재 직업과 무관하게 선고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하는 일이 목록 밖이고 아동·청소년과 접촉이 없다는 점은 면제나 기간 단축의 사정으로 쓸 수 있습니다.
재범 위험성 평가는 어디서 받나요?
제56조 제3항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학자 등 관련 전문가의 의견을 들을 수 있게 하므로, 그 자격을 가진 전문가에게 평가를 의뢰해 서면으로 받아 제출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취업제한 기간은 언제부터 세나요?
형의 전부 또는 일부의 집행을 마치거나 집행이 유예·면제된 날부터이고, 벌금형이면 그 형이 확정된 날부터입니다. 기간은 10년을 넘지 못하며 재판부가 그 안에서 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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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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