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정산이 끝난 밤 열한 시 반, 고깃집 사장은 스무 살 아르바이트생 C씨에게 다음 달 근무표 이야기를 하자며 차에 타라고 했습니다. 주말 근무를 늘려 줄 수도, 줄일 수도 있다는 말이 몇 번 오갔고, 그날 밤 두 사람 사이에 성관계가 있었습니다. C씨는 소리를 지르지도 밀쳐 내지도 않았습니다. 석 달 뒤 C씨가 고소장을 내자 사장은 서로 좋아서 한 일이라고 답했습니다. 때리거나 위협하지 않았다면 죄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 글은 그 질문을 따라갑니다.
사장과 알바도 법이 말하는 보호ㆍ감독 관계인가
형법은 업무나 고용, 그 밖의 관계로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을 위계나 위력으로 간음한 경우를 따로 처벌합니다. 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조문은 정규직이냐 아르바이트냐를 가리지 않습니다. 근무 시간을 정하고, 시급과 근무표를 쥐고, 계속 일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이라면 고용 관계에 따른 감독자라고 보는 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근무 기간이 몇 달에 불과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짧게 일하는 사람일수록 다음 달 근무표 한 장이 생활비 전체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때리거나 위협하지 않았는데 위력이라 할 수 있나
강간죄의 수단은 폭행 또는 협박입니다. 반면 이 죄의 조문은 그 자리에 위계 또는 위력이라는 말을 넣었습니다. 입법자가 다른 단어를 고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위력은 상대의 의사를 누를 수 있는 힘을 넓게 가리키는 말로 쓰입니다. 물리적인 힘만이 아니라 지위에서 나오는 영향력도 여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근무표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말이 오간 직후의 요구라면, 받는 사람에게 그것은 부탁이 아니라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 됩니다.
물론 사장이라는 지위만으로 모든 관계가 위력에 의한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따져야 할 것은 그날 그 요구가 지위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는지, 거절하면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는 인식을 상대에게 주었는지입니다.
거절하지 않았다면 동의한 것으로 보나
사장 쪽이 가장 먼저 내세우는 사정이 이것입니다. 저항하지 않았고, 다음 날에도 평소처럼 출근했으며, 메시지도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죄는 애초에 뚜렷한 저항이 없는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졌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강간죄가 검토되었을 것입니다. 거절하지 못한 사정 자체가 이 죄의 핵심이므로, 저항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동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수사기관이 실제로 살피는 것은 관계 전체입니다.
- 나이, 근무 기간, 근무표와 급여를 누가 정했는지
- 그날 오간 말 가운데 근무 조건이나 계속 고용과 연결된 표현
- 사건 전에 사적인 관계로 볼 만한 교류가 있었는지
- 사건 뒤 근무 조건이 바뀌었는지, 피해자가 누구에게 언제 말했는지
당장 일을 그만둘 수 없는 형편이었다면 다음 날의 출근은 동의의 증거라기보다 불이익을 피하려는 선택이었을 수 있습니다.
간음이냐 추행이냐, 상대 나이에 따라 무엇이 달라지나
같은 고용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도 행위의 내용과 피해자의 나이에 따라 적용 법률이 바뀝니다. 절차에서 받을 수 있는 보호도 함께 달라집니다.
| 상황 | 적용 조문과 형 | 조사ㆍ증언 때 신뢰관계인 동석 |
|---|---|---|
| 성인 직원을 위력으로 간음 | 형법 업무상위력등에 의한 간음, 7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 형사소송법에 따라 불안ㆍ긴장 정도를 보고 허가 (재량) |
| 성인 직원을 위력으로 추행 | 성폭력처벌법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3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 | 신청하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허가 |
| 19세 미만 직원을 위력으로 간음ㆍ추행 | 청소년성보호법, 강간ㆍ강제추행의 예에 따름 | 신청하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닌 한 허가 |
첫 줄과 둘째 줄의 차이는 눈여겨볼 만합니다. 성폭력처벌법의 의무적 동석 목록에는 업무상 위력 추행이 들어 있지만, 형법의 업무상위력 간음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C씨처럼 성인이 간음 피해를 입은 경우에는 현저한 불안이나 긴장이 우려된다는 사정을 들어 동석을 신청해야 하고, 경찰 조사 단계에서도 같은 기준이 적용됩니다.
19세 미만이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위계나 위력으로 아동ㆍ청소년을 간음하면 아동ㆍ청소년 강간과 같은 형인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피해를 알린 뒤 일자리는 어떻게 되나
고소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대개 생계입니다. 상시 5명 이상이 일하는 사업장이라면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나 감봉이 제한됩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도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말한 근로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작은 가게라면 회사 안에 기댈 창구가 따로 없으니, 근무표 변경 통보, 급여 명세, 해고 문자처럼 고소 전후로 달라진 것을 날짜별로 남겨 두는 것이 이후 노동 분쟁과 형사 절차 양쪽에 쓰입니다.
피해를 입은 쪽은 어떤 순서로 움직이면 되나
- 사장과 주고받은 메시지, 근무표, 급여 기록을 삭제하지 말고 따로 백업합니다.
- 사건 직후 이야기를 들은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누구에게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적어 둡니다.
- 고소는 경찰에 서면이나 말로 합니다. 고소장을 내기 전에 피해자 변호사와 사실관계를 정리해 두면 조사가 한결 수월합니다.
- 조사에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함께 들어가길 원하면 조사 전에 동석을 신청합니다.
변호사는 경찰과 검찰 조사에 참여해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재판에서도 피해자를 대신해 할 수 있는 소송행위를 폭넓게 맡습니다.
혐의를 받는 사장은 무엇을 살펴야 하나
합의에 따른 관계였다고 주장하려면 말이 아니라 자료가 필요합니다. 사건 전부터 이어진 사적인 교류가 있었는지, 그날의 대화에 근무 조건과 연결된 말이 있었는지, 사건 뒤 근무 조건을 바꾼 일이 있는지를 스스로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주의
고소 사실을 안 뒤 근무표를 줄이거나 그만두라고 하면 그 자체가 위력의 정황으로 읽힙니다. 고소를 취소해 달라는 연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응은 변호인을 거쳐 하고, 해당 직원의 근무 조건은 사건 전 그대로 두십시오.
정리
사장과 아르바이트생 사이도 형법이 말하는 보호ㆍ감독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더라도 근무 조건을 쥔 사람이 그 지위를 배경으로 한 요구라면 위력에 의한 간음이 검토됩니다.
거절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동의의 증거가 아닙니다.
피해를 입은 쪽은 근무 기록과 대화를 보존한 채 고소와 동석 신청을 준비하시고, 혐의를 받는 쪽은 근무 조건에 손대지 말고 변호인과 함께 관계 전체를 설명할 자료를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참조 조문
형법 제297조, 제303조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제27조, 제34조 ·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7조 · 형사소송법 제163조의2, 제221조, 제237조 · 근로기준법 제11조, 제23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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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근무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도 보호ㆍ감독 관계가 되나요?
조문은 근무 기간을 요건으로 두지 않습니다. 근무 시간과 급여, 계속 고용 여부를 상대가 정하는 관계였다면 기간이 짧아도 고용 관계에 따른 보호ㆍ감독 관계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날에도 출근했으면 동의한 것으로 보나요?
출근했다는 사실 하나로 동의가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생계 때문에 바로 그만둘 수 없었던 사정, 사건 뒤 근무 조건의 변화, 주변에 알린 시점 등 관계 전체를 함께 보고 판단합니다.
성인 피해자인데 경찰 조사 때 엄마가 옆에 있어도 되나요?
간음 피해를 입은 성인이라면 조사 때 긴장과 불안이 크다는 사정을 설명하며 어머니의 동석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받아들일지는 경찰이 그 사정을 보고 정합니다. 추행 사건이라면 성폭력처벌법에 따라 신청하면 원칙적으로 허가됩니다.
고소한 뒤 사장이 해고했다면 어떻게 하나요?
상시 5명 이상 사업장이라면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는 제한되므로 노동위원회 구제 신청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해고 통보 문자와 근무표 변경 기록을 형사 사건 자료와 함께 보관해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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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검토: 한병철 변호사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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